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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2013 복권기금 특별전> 조선여인의 삶
전시기간
2013년08월12일 ~ 2013년11월03일 [지난전시]
전시장소
기획전시실(2,3층)
주요 전시 이미지
 


조선여인의 삶 특별전을 개최하며

조선의 여인은 두 번 결혼할 수 없었다. 두 번 결혼하면 아들 손자까지 문과에 응시할 수 없는 등 사회적 진출이 제한되었다. 조선사회는 남성중심이었고, 여성은 철저히 남성에 종속되었다.
이번 특별전은 규제와 억압을 꿋꿋하게 이겨낸 조선 여인들의 삶과, 역경속에 꽃피운 규방문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조선 여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바로 잡고자 마련하였다.

 

1부. 출생과 혼인

출생과 교육

조선시대 여자아이의 탄생은 환영받지 못하는 일이었다. 아들을 낳는 것이 조상에게 갖추어야할 예이자 후손의 도리였다. 여성교육은 어머니가 거처하는 안채에서 시작되었다. 기초적인 한자나 언문을 배우는 정도에 그쳤으며, 유교적 윤리규범에 입각해 정숙한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함양하는 교육이었다.

계례과 혼례

여자가 15세정도 되면 성인식인 계례(笄禮)를 행했다. 머리카락을 올려 쪽을 짓고 비녀를 꽂는 의례이다. 서민들의 경우는 대개 혼례에 묻혀 따로 계례를 행하지 않았다. 남자 성인식은 관례(冠禮)로 상투를 틀고 관모를 썼다. 혼인 연령은 경국대전에 여자 14세이상, 남자 15세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잉태와 육아

십년공부보다 뱃속의 열달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그만큼 산모의 태교를 중시했다. 여아는 어머니가 안채에서 교육했고, 남아는 46세가 되면 안채에서 나와 아버지가 거처하는 사랑방에서 글공부를 시작하였다.

사랑, 부창부수夫唱婦隨

조선시대에는 부부간에 존대어를 썼다. 지아비를 하늘처럼 섬기는 것이 전통의 시대 여인의 덕목이었지만 부부간의 사랑 또한 절절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본부인과 이혼할 수 없었다. 첩을 둘 수는 있어도 부인을 내치고 그 자리에 첩을 올릴 수는 없었다. 부인과 첩은 엄격하게 구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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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가사와 생활


가사와 생업

내외법의 구분에 따라 남자는 바깥살림(집밖의 일)을 담당하고 여자는 안살림(집안의 일)을 책임졌다. 조선시대 여인은 출산, 육아, 농사일, 가사일, 베짜기 등 쉴 틈이 없었다. 여성들은 농사를 짓지 않는 겨울에도 베를 짜야 식구들에게 옷을 입힐 수 있었다.

의상과 장신구

유교규범에 따라 청결단정검약을 미덕으로 하여 여성들의 의복도 평상시에는 정결한 치마저고리를 입었고, 혼례나 특별한 때에 화려한 원삼이나 활옷을 입었다. 여인들은 단정한 용모와 옷의 맵시를 돋보이기 하기 위해 머리장식품과 노리개, 반지 등의 장신구를 애용하였으며, 과한 수식(修飾)은 금하였다.

여가와 놀이

붓과 먹이 남자들의 문화라면 여자들의 문화는 바느질이다. 여러 색실로 수놓는 자수는 가장 여성적인 창작예술품이다. 여인들은 소설독서를 즐겨했다. 화전놀이처럼 여인들의 공식적인 나들이 문화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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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흔들리며 핀 꽃

 

여성의 사회적 지위
남녀 균등상속과 윤회봉사

16세기만해도 아들과 딸에게 재산이 균등하게 상속되었고, 제사도 아들과 딸이 돌아가며 모셨다. 17세기를 과도기로 조선사회가 장자 위주로 변모되면서 재산도 큰 아들에게 많이 물려주고, 제사도 큰아들이 모셨다.

외손도 친손과 동등하게 족보에 수록

조선전기에는 족보에 외손(딸의 자손)도 친손(아들의 자손)과 함께 수록되었다. 그러던 것이 조선후기에 들어와 친손만 수록되는 형태로 변모되었다. 수록되는 순서도 출생순이었다가 아들이 먼저 기록되고 딸이 뒤에 기록되는 형태로 바뀌었다.

칠거지악과 3불거

조선시대에 칠거지악(七去之惡)의 허물이 있으면 부인을 쫒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3불거(三不去)라고 하여 처가 갈 곳이 없거나, 부모의 3년상을 같이 치렀거나, 혼인 후 부유해진 경우에는 칠거지악의 경우라도 부인을 버릴 수 없었다.

 조선시대의 여성상

조선의 여성상은 언행이 바른 며느리, 정숙한 부인, 어진 어머니이다. 효녀와 효부, 열녀는 이런 조선 여인의 표본이다. 율곡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은 아들을 훌륭하게 길러낸 어머니로 조선여인의 표상이 되어 받들어졌다.

시대를 뛰어넘은 여인들
- 자신의 처지를 문학으로 승화시킨 여인들

허난설헌은 조선시대 여성문인으로 가장 빼어난 인물이다. 27세에 요절한 허난설헌은 고단한 현실을 극복하고 시대에 맞서는 많은 시들을 남겼다. 신분은 미천하지만 기생 황진이와 매창은 사랑과 아픔을 노래한 빼어난 시로 명성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