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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05-09 17:35
<전주 문화유산 50> 고지도로 본 조선시대 전주천의 다리
 고지도로 본 조선시대 전주천의 다리


조선시대 전주천에는 어떤 다리들이 있었을까?

《완산지》에는 전주부성의 3대 다리인 남천교, 서천교, 추천교만이 등재되어 있다. 그런데 흔히들 전주부성에 남천교와 서천교를 비롯해 싸전다리, 쇠전다리(연죽교), 소금전다리, 사마교 등 여섯 개의 다리가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 추천교를 합하면 일곱 개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전주부성에 실제로 어떤 다리들이 있었으며, 이 다리들의 형태는 어떠했을까? 이런 의문을 풀고자 할 때 주목되는 것이 전주의 옛지도들이다.

고지도는 도시의 모습을 회화풍으로 그려놓은 것이다. 옛지도는 사진에 비견되는 한 폭의 기록화이다. 전주에는 19세기 모습을 상세히 그려놓은 병풍형의 대형 전주부지도가 2점이나 있다. 조선시대의 전주를 복원하는데 무엇보다도 귀중한 자료들이다. 전북대박물관과 국립전주박물관 소장 전주고지도가 바로 그것인데, 후자에 전주천의 다리가 상세히 그려져 있다. 전북대박물관소장 지도는 전주부성의 주다리인 남천교, 서천교, 추천교만 그려져 있는 것에 반해, 국립전주박물관 소장 지도에는 이 외의 나무다리, 징검다리들이 상세히 표기되어 있다. 

 국립전주박물관 소장 전주 옛지도를 통해, 슬치에서 발원한 전주천을 따라 전주에 들어오다 보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한벽당 부근의 징검다리이다. 전주천이 한벽당에서 우회하여 얼마 안간 위치로, 이를 지나면 그 유명한 남천교(南川橋)가 나온다. 조선시대 남천교 위치는 강암서예관에 못미치는 지점으로 지금의 남천교 자리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징검다리는 지도상으로 볼 때 한벽당과 남천교 중간정도 지점에 있다. 남천교라 이름한 것은 이 천의 이름이 남천(南川)이기 때문이다. 전주천이 우회하면서 전주부성의 남쪽을 흐르므로 남천이라고 하였다. 

 남천교는 중진영과 남고산성을 잇는 교량으로 전주부성에서 남원을 가려면 이 다리를 이용해야 했다. 전주천의 다리 중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고 칭해지던 남천교는 돌로 만든 5간의 무지개다리(오홍교)로 다섯 개의 창이 있다고 해서 일명 안경다리라고도 했다. 여기에 다섯마리의 용을 새겨 놓았는데 그 앞산 승암산이 화산이어서 재앙을 불러올 수 있음으로 그 기를 누르고 전주부성의 안녕을 기원하는 뜻을 담았다고 전한다. 고지도를 통해 용머리는 확인되지 않지만, 5개의 창을 가진 남천석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남천교는 18세기말에 개건된 것으로, 이때의 사정을 담은 남천교개건비가 다리 옆에 있었는데 지금은 전주교대 정문 옆으로 옮겨져 있다. 

 남천교를 지나 남문 쪽으로 오면 징검다리가 나오고 그 옆에 나무다리가 그려져 있으며, 나무다리를 지나 곤지산 끝자락에 징검다리가 그려져 있다. 고지도에는 남천교와 달리 그 다리의 명칭이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싸전다리(米廛)라고 불렸던 지금의 전주교에 해당하는 다리이다. 전주교는 1922년 전북 최초로 콘크리트로 시공한 교량이다. 이 다리를 끼고 미곡상들이 늘어서 있었다고 하여 싸전다리라고 했는데, 언제부터 그러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싸전다리와 징검다리를 지나 서천교 못미쳐서 또 하나의 나무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가 지금의 매곡교로 보인다. 매곡교는 맷골로 가는 다리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그 아래로 우시장이 열려 쇠전다리라고도 하고, 다리 주변에 담뱃대 장수들이 즐비해 연죽교(煙竹橋) 또는 설대전다리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 지도에 나타난 남천교(맨위), 도토리골 외지소앞 나무다리(조선시대 전주지도)(가운데), 조선시대 전주지도에 나타난 서천교, 염전교(완산교), 사마교(다가교)

 매곡교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서천교(西川橋)이다. 고지도에 나무다리로 그려져 있고 서천교라고 명기되어 있다. 서천교라 이름한 것은 이 천을 서천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전주천이 완산교를 지나면서 북향하여 전주성의 서쪽을 흐르므로 서천이라 하였다.

 현 서천교 서편에 1847년(헌종 13)에 세운 서천교개건비가 서있다. 개건시 황방산의 돌로 석교를 세운 것으로 되어 있는데, 지도상에는 나무다리로 나타나 있다. 서천교 개건 이전에 서천교는 나무와 흙으로 만든 다리였다. 개건 이후 1896년 승지 김창석이 서천교를 다시 개축하였으며, 1932년 박기순(朴基順)이 이곳에 다시 나무다리를 가설하였다. 그래서 서천교를 박참판 다리라고도 한다.


 서천교를 지나서 다가산 못미쳐 나무다리가 하나 더 있다. 이 다리가 지금의 완산교에 해당된다. 완산교는 소금전이 있어서 소금전다리 혹은 염전교라고 하였다. 완산다리에서 서천교 가는 전주천변에 전주의 기록문화를 대변하는 다가서포, 서계서포 등의 책방이 있었다.


 완산교를 지나 서문 근처에 사마교가 보인다. 지금의 다가교에 해당하는 다리지만, 실제 위치는 지금의 다가교 위편이다. 사마교란 이름은 신흥학교자리에 향교, 사마재 등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고지도에 징검다리로 그려져 있고, 삼하교(三河橋)라고 쓰여 있다. 사마교 건너 좌편 다가산 아래 다가정과 천양정이 있다.

 사마교를 지나면 도토리골 앞으로 나무다리가 나온다. 사직단 북쪽 도토리골 천변가에 종이를 만드는 외지소(外紙所)가 있는데 바로 그 앞이다. 다리명칭은 표기되어 있지 않다. 지금의 도토리골 다리에 해당하는 나무다리이다. 지소 앞에 이런 다리가 건립된 것은 그만큼 종이 물량이 많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도토리골 나무다리를 지나 전주천과 삼천천이 만나는 자리에 전주부성의 마지막 다리라고 할 수 있는 추천교가 있다. 추천교는 지금의 전주대교에 해당한다. 《완산지》에는 추천교가 석교로 나오는데, 고지도상에는 나무다리형상을 하고 있으며 추천교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그 위로 한내를 건너 삼례역과 비비정이 자리했다.


 이처럼 전주천에는 석교를 비롯하여 나무다리, 징검다리 등 생각보다 많은 다리가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은 전주천이 그만큼 전주인들의 삶과 밀접했으며, 또 한편으로 그만큼 전주를 중심으로 물산이 활발하게 유통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동희(전주역사박물관장)

출처: 2006. 12. 19(화) 전북일보